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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10, 2012

Korean in US massage parlor


마사지팔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31/2010103100383.html

university professor's wife service in LA massage parlor
대학교수 부인이 LA 안마시술소에.. '기러기엄마' 탈선 급증
김동현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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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31 14:39 / 수정 : 2010.10.31 18:46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행을 택한 일부 기러기 엄마들이 외로움에 못 이겨 탈선의 늪에 빠져 결국에는 매춘업 등에까지 종사하고 있다고, LA 교민방송 ‘라디오코리아’가 보도했다. 이 방송은 마사지 팔러(massage parlor·안마시술소)에 취직했다가 성병에 걸린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이 방송이 보도한 기러기 엄마 P씨의 사례. 20대 초반에 대학교수와 결혼한 P씨는 8년 전 9살, 12살 된 남매를 데리고 LA로 이주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다.

영어구사가 힘들었던 P씨는 학부모회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남매와의 대화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기러기 엄마들의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P씨는 “정말 많이 외로웠는데, 사람들 만나면서 여행도 다니고 (성격도) 좀 밝아졌다”며 “그러다가 돈이 급해졌고 노래방 (도우미) 먼저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기간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서 알 수 없는 벽이 생긴 P씨는 업소 사장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교육비에 생활비까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던 P씨는 또 다른 일자리가 필요했고, 남자친구로부터 마사지 팔러를 소개받았다.

P씨는 한인타운보다는 차이나타운이나 롱비치 등 외곽지역에서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했다고 고백했다.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녀는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며 “나갈 때마다 ‘나는 누구누구 엄마가 아니다’라고 최면을 건다. 그러면 죄책감이 좀 덜해지니까”라고 말했다.

일주일 사이에 2000달러(약 225만원) 넘게 쉽게 벌 수 있다 보니 P씨는 마약에 빠진 듯 마사지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P씨는 결국 윤락녀로 전락했고 가정은 파탄 났다. 그녀는 “남편이 연락도 없이 사진 몇장 들고 LA에 와서 ‘애들 생각해서 조용히 그만두자’고 했다”며 “우리 애들한테 나는 죄인이다.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돈 쓰는 게 익숙해졌고”라고 말했다.

LA에서 활동하는 한 사설탐정가는 최근 한국의 남편들로부터 ‘부인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 건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 탐정가는 “한 기러기 엄마는 이혼당하게 됐는데 성병에 걸렸다”며 “손이 썩어들어가는데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그렇게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라고 이 매체에 전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러기 엄마들의 경우 뒤늦게 언어나 사고방식 등이 다른 환경에서 의지할 남편과 떨어져 자녀들을 양육하다 보니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어 탈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쉼터 마리아 유 원장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큰돈을 쉽게 벌다 보니 도덕적인 면은 잊게 되는 것”이라며 “부부가 떨어져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외로움이 됐다가 나중에는 서로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usuyoa1&logNo=100024078533

뉴욕의 맛시지 팔러 記事
2006/05/05 21:17
http://blog.naver.com/susuyoa1/100024078533

海外르포/뉴욕 現場取材
밤에 피는 꽃 맛사지 걸
뉴욕에서 몸 하나로 살아가는 韓國人 女性들의 賣春實態, 最初公開!
(1부)
賣春行爲
뉴욕 맨하탄에는「맛사지 팔러」라는 곳이 있다.
‘맛사지 팔러’는 국내에서 한때 호텔근처에 혹이 붙어 있듯이 붙어 있는 터키탕과 같다. 터키탕이 음란한 행위를 한다고 알려져 사라져버렸고 대신 생겨난 것이 ‘안마시술소’이다.
안마시술소는 주로 장님들이 독점하면서 장님들의 생업을 이어가는 직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가끔 여자 장님을 불러 안마를 시킨 후 욕정이 발기하면 팁이란 명목으로 웃돈을 얹어 준 후 섹스관계를 맺는다고 알려졌고 안마협회서는 전혀 그런 행위가 없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맛사지 팔러’는 터키탕과 비슷한 곳이다. 뉴욕의 맨하탄에 있는 ‘맛사지 팔러’는 터키탕을 흉내낸 창녀 업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터키탕을 찾았던 손님들은 터키탕에서 벌어지는 묘미를 기억할 것이다.
남자가 옷을 벗고 나상으로 들어가면 가볍게 목욕을 한 다음 목만 내놓고 스팀 통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 땀을 뺀 후 옆방으로 안내된다. 그 방에서 손님과 맛사지 해 주는 여자만 있게 된다.
그러면 완전히 발가벗은 남자가 침대 위에 눕는다. 맛사지 해 주는 여자는 흰 타울로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덮은 다음 전신에 맛사지 골드를 바른 후 어깨에서부터 안마를 하기 시작한다.
맛사지를 해 주는 여자들은 대부분 20세에서 25세 미만의 팔팔하고 싱싱한 아가씨들.
흰 원피스 가운을 입었지만 무릎 위로 올라온 치마 길이가 마치 핫팬티와 같다. 이 아가씨가 맛사지를 하기 위해 팔을 벌리거나 남자의 몸에 골드 크림을 바르기 위해 좁은 공간을 움직일 때 사내의 눈에는 여자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쪽으로 누우세요.”
여자는 어깨로 기교를 발휘해 안마를 하면 남자의 삭신이 노긋해 진다. 온 전신을 여자에게 맡기고 팔과 어깨를 시원하게 맛사지를 한 다음, 여자의 미끌미끌한 손이 차츰 아래로 내려온다.
중요한 부분에 와서는 엎드리라고 한다. 엎드리면 잔등과 척추를 시원하고 상쾌하게 안마를 해 준다. 다시 천장을 보고 바로 누우면 여자는 사내의 허벅지와 종아리 쪽을 안마해 나간다.
어느 때는 허리를 좀 더 세차게 눌러달라고 할 때 여자가 침대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면 남자 고객은 그녀가 노 팬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맛사지 하는 여자들은 일부러 남자의 성욕을 돋구기 위해 노 팬티 차림. 움직일 때마다 남자의 시선이 자꾸 쏠리는 것은 당연한 남자의 생리다.
“스페셜 해 드릴까요?”
“해 줘.”
젊은 여자가 온 몸을 골드크림으로 전신 맛사지를 해서 성세인 피부가 어느새 욕망을 일으키도록 전초 작업을 해 놓았기에 반대할 남자는 1백 명중 한 두 사람 정도이다. 어쨌든 이 맛에 남자들은 터키탕을 찾는 것이다.
온 삭신이 무겁고 찌뿌등 하면 터키탕을 찾을 경우 상쾌해지기 마련이었다.

「맛사지 팔러」에 怪漢 侵入도
스페셜이란 남자의 성기를 맛사지 해 준다는 뜻이다. 사내의 그 근처를 시원하게 맛사지 하는데 근처의 성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일부러 여자들은 그 부근에 한동안 손놀림을 한다. 성욕을 유발키 위해서다. 자연히 발기하게 된다. 20대의 젊은이라면 여자의 손이 몸에 닿는 순간 팽팽하게 발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페셜은 골드크림을 바르고 성기를 맛사지 해 주는 것인데 일종에 여자의 손으로 자위를 시켜주는 일이었다. 어떤 남자는 그것보다 실제로 행위를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욕망으로 발기돼 있는 손님의 침대로 올라가 성행위를 해주고 팁을 받는다. 이것은 말로만 맛사지 일 뿐 남자의 근육을 맛사지 해준다는 명분으로 하는 고급 창녀의 매춘행위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 흉내낸 ‘맛사지 팔러’가 미국의 맨하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뉴욕에는 매춘행위를 불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맛사지 팔러는 경찰의 눈을 피해 서식하고 있다.
이 맛사지 팔러가 교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원인은 경영자가 한국인이며 대부분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들이 한국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을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는 국내로 말하면 영등포, 청량리, 서울역 근처, 노량진 역전, 미아리 텍사스 같은 매춘지역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 이 ‘맛사지 팔러’는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플러싱, 퀸즈 등이 있다. 한국의 남자들은 거의 미국의 사창가에 갈려고 하지 않는다. 에이즈의 무서운 병에 걸릴 경우의 공포 때문도 그렇고 미국인들은 마약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 마약을 즐기는 자에게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매독균이 있기에 아예 미국 여자를 찾아 사창가에 가지를 않는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한국인을 상대로 한 ‘맛사지 팔러’다. 그러나 이 ‘맛사지 팔러’의 운영은 한국인의 경우보다 중국인이 더 많다.
한국 여자들을 데리고 중국인이 경영하는데 이 중국인은 갱단이거나 중국 갱과 관련을 갖고 있다. 이 ‘맛사지 팔러’가 가끔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건이 발생해서 교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곤 한다.

韓國人 不法 滯留者가 단골
지난 3월 29일이었다. 교포 신문에는 사회면 톱기사로「여종업원 등 3명 총에 맞아 중태」「맨하탄 한인 ‘맛사지 팔러’에 괴한 침입」이란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매해마다 적어도 3-4번 정도 터져 나오는 ‘맛사지 팔러’의 기사여서 교포들은 놀라지 않았다.
뉴욕 시에서만 1년간 1년간 살인사건이 1천 5백여 건이 발생하고 있어 ‘총기사건’은 으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이 경영하고 한국인 여 종업원이 총에 맞았기에 교포 사회에서만 떠들썩한 것이었다. 그날의 기사는 이러했다.
맨하탄 한 ‘맛사지 팔러’에 4명의 괴한이 침입, 한인 1명을 포함한 3명에게 총격을 가하고 달아났다. 그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사건을 수사 중인 맨하탄 미드타운 경찰서는 종업원 10여 명을 불러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은 체포하지 못 했다.
뉴욕시경의 큐불러 대변인은 맨하탄의 ‘럭키 29’라는 ‘맛사지 팔러’에 괴한이 침입, 교포 김 은애(27)씨와 한국인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남녀 2명에게 총격을 가하고 타고 왔던 녹색 스테이션 웨곤을 타고 달아났다.
김씨는 총에 팔을 맞고 빈센트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되었으나 가슴에 총을 맞은 남자와 복부에 총을 맞은 여자는 중태였다.
사건이 생긴 ‘럭키 29’라는 클럽은 건물 2층과 3층에 종업원 10여 명이 기숙하면서 불법으로 매춘행위 등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맛사지 팔러’에 총격사건이 터지면 으레 한국인이 경영하고 있어서 한인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맛사지 팔러’ 영업을 경찰이 막아야 하는데 불법인줄 알면서도 경찰이 찾아내기 어렵게 돼 있다. 적어도 외국인이나 뉴욕 경찰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찾기가 힘들게 돼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면 누구나 금방 눈에 띄고 알아차릴 수 있고 한국 남자들은 ‘맛사지 팔러’가 어디 어디에 있는지 거의 알고 있을 정도다. 이 ‘맛사지 팔러’가 끊임없이 성행하는 이유는 뉴욕에서 오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 불법 체류자들이 성욕을 발산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국인이 경영하는 ‘맛사지 팔러’뿐이기 때문이다.
‘맛사지 팔러’에서 갱이 총격을 가했다 해서 손님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불법 체류자들은 90%가 독신인 단신자들이다. 본국에 처자식을 두고 꿈을 펼치기 위해 여러 루트를 통해 미국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이다.
결혼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하고 또 불법 체류자와 한국 여성이 쉽게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자인데다가 젊고 성욕을 누르며 사는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우연히 술에 취하면 참았던 성욕이 불길처럼 일어나 자제할 수가 없을 때 찾아가는 곳은 ‘맛사지 팔러’다. 그렇지 않으면 성욕을 풀 곳이 미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僑胞新聞에 버젓이 廣告
그러면 ‘맛사지 팔러’의 광고가 어엿하게 교포 일간지에 나고 있다. 직접적인 매춘광고를 게재할 수 없지만 광고를 보면 단번에 직감으로 ‘맛사지 팔러’임을 알 수 있다. 즉 ‘헬스클럽’이라고 둔갑한다.
국내에서의 헬스클럽하고는 전연 그 이미지가 다르다. 국내에서의 헬스클럽이란 온갖 기구를 갖다놓고 몸의 건강을 위해 육체를 단련시키는 곳이지만 미국 뉴욕에서의 헬스클럽이란 창녀의 매춘을 의미한다.
24시간 영업, 아늑한 분위기 편히 쉴 수 있는 곳, 여 지압사 구함. 무 경험자 환영, 침식제공. 이런 투의 광고 문구다. 여자 맛사지 걸이 ‘여 지압사’로 둔갑했다. 상호 이름이 애플, 즉 사과다. 사과의 이미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따먹은 열매, 그로 인해 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성경 구절을 옮겨오는 것이 지루할 것이다. 그러면 ‘맛사지 팔러’의 구조와 내막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나는 뉴욕에 6개월 간 머물고 있는 사이 ‘맛사지 팔러’에 총격사건과 같은 일을 두 번이나 기사를 읽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맨하탄 30가와 28가 등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맛사지 팔러’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 다녀보았다. 대부분 이 ‘맛사지 팔러’는 2층과 3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전화 번호를 신문에서 찾아내어 호기심으로 다이얼을 돌린 적이 있었다.
“여보세요. ‘맛사지 팔러’지요?”
“헬스클럽인데요.”
“아가씨 이쁩니까?”
“와서 보세요.”
“얼마입니까? 처음이라서……”
“오시면 알게 돼요.”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맛사지 팔러 現場에 가다
한국은 모든 것이 앞이 확 트여 있다. 은행에서도 고객과 은행직원 사이에 칸막이가 전혀 없다.
또 어느 금은방이나 가게를 들어가도 문을 밀치면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뉴욕은 그렇지가 않다. 아니, 전 미국이 그렇지가 않다. 은행은 직원과 고객 사이에 투명 방탄유리로 가로 막혀있고 택시도 마찬가지다.
고급 상점에 들어가려고 하면 밖에 있는 벨을 눌러야 한다. 손님이 벨을 누르면 안에서 유리를 통해 손님의 모습을 확인한다.
보기에 불량하거나 주인 느낌에 뭔가 불안하여 안에서 벨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 데 손짓으로 물건을 안 판다는 시늉을 한다. 느닷없이 총과 칼을 겨루고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기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곳이 미국이다.
‘맛사지 팔러’도 예외일 수 없다. 용기를 내어 ‘맛사지 팔러’를 찾아갔다. 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교포들에게서는 이 ‘맛사지 팔러’를 두고 많은 화제를 낳고 있었다.
어느 유학생이 방학을 이용해서 서부에서 와서 일 한 후 몇 만 달러를 벌어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한 유학생이 있기도 했고 또 집을 뛰쳐나간 젊은애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맛사지 팔러’에 취직을 했다는 등 교포 사회는 워낙 말이 많은 곳인데 별별 얘기가 ‘맛사지 팔러’ 주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한결 같은 공통점은 ‘맛사지 팔러’는 쑥스러워 하고 거기 갈 때는 혹시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까 얼굴을 붉히기 마련이다. 창녀촌에 갈때의 남자들 심정과 꼭 같다.
나는 취재 목적으로 찾아갔지만 좀 쑥스럽고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맨하탄의 도시는 대개 건물들이 1백 년을 지나서 퇴색한, 우중충하고 색이 중세기 같은 건물이 많았다. 이미 미국은 60년대에 산업의 절정기에 올랐고 지금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
건물은 육중하고 튼튼하게 돌을 다듬어 기초공사를 단단하게 하여 외면상 보기에는 퇴색했지만 건물은 여전히 건강했다. 원래 한국인 도매업자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브로드웨이 32가부터 그 밑으로는 흑인지역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들어서면서 어느새 10년만에 활기찬 거리로 변했다. 이 맨하탄의 거리, 상점이 간혹 가다가 뚝 끊어지고 쓸쓸한 거리가 이따금 있기 마련이다.
내가 찾아간 곳은 검붉은 색, 흑인들이 좋아하는 색깔이 칠해진 7층 건물이었다. 빌딩을 들어서기 전 현관을 들어서면서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멈췄다. 엘리베이터를 나서면 또 복도나 현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사무실인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곧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용무 있는 분은 초인종을 눌러달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入場料 30달러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기다렸다.
몇 초 후에 아파트 문의 구멍보다 조금 더 큰 구멍으로 시꺼먼 눈동자가 나타났다.
안에서 밖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색, 어느 인종인가?, 얼굴을 나름대로 관찰하면서 들여보내도 좋은가 하는 확인하는 눈이었다. 어느 ‘맛사지 팔러’는 편지봉투 넣는 함같이 만들어 놓고 평상시는 커튼으로 가리웠다가 벨 소리가 들리면 그 조그마한 구멍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조그마한 구멍에서 눈동자만 보이기 때문에 처음 가는 사람은 조금 어색하고 매서운 눈초리에 기관원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 때 기관원의 악질적인 눈처럼 매섭고 날카롭게 보인다.
불법 매춘이기에 혹시 경찰이나 갱단, 혹은 마약에 취한 정신이상자가 아닌지 그 쪽에서도 당하기 전에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눈동자를 보고 안심했는지 삐이-하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an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안에 있기에 안에서 스위치를 올리지 않으면 밖에서 절대로 문이 열리지 않게 돼있다.
삐이-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후 내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이 닫쳤다. 들어서자 안은 대기실이었다. 쇼파가 있고 응접실 같은 분위기였다. 몇 사람이, 그 중에는 백인 중년인도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인을 찾았다. 조그마한 버즈와이즈 한 병을 들고 온 아가씨는 나를 손님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 아가씨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쨌든 주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주인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음부터 경험을 다 한 후 밀실에서 나와 상대한 맛사지 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취재하기로 했다.
우선 입장료를 내도록 돼 있다. 1인당 30달러. 이곳에 오기 전 정보를 입수했는데 업소에 따라 그 값이 다르다고 했다. 입장료를 내고 한 30분 정도 기다리고 있자 가운을 걸친 여자가 수건을 들고 나타나 나를 불렀다.
“우선 샤워를 하세요.”
응접실 같은 대기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목욕실이 나타났다. 간단히 비누칠을 하고 나자
“스팀에 들어 가실래요?”
사무적인 투로 질문을 했다.
“아니요.”
이곳에 온 이유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기에 한가롭게 스팀 룸에 앉아서 여유를 즐길 생각은 없었다. 스팀 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하자 맛사지 걸이 안내한 곳은 3평정도 크기의 방안이었다. 방안은 장치가 아름답게 돼 있거나 시설이 아늑하지도 않았다.
광고를 믿지도 않지만 아늑한 ht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있는 것이란 나무침대 한 개가 벽에 붙어서 거의를 차지하고 있고 탁자 하나가 있었다. 그 탁자 위에는 타올과 오일로션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종류의 화장품이 있었다.
처음 본 여자와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육체관계를 맺기 위해 왔고 그녀도 성 관계를 해주면 끝난다는, 사무적인 관계여서 분위기는 따뜻하다든지 유머를 둘 관계가 밀접해지지 않았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산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 맛사지 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미국에 있는 한국 술집이나 살롱의 호스티스들이 대부분은 늙은, 퇴기 같이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계속) 기사 끝.
1988년 12월 創刊號 月刊 大衆實話
[출처] 뉴욕의 맛시지 팔러|작성자 개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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