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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21, 2012

Jeogori, the transition for 600-year-history

저고리600년의 변천사
チョゴリ600年の変遷史



저고리 600년 변천사 한 눈에
저고리 600년 변천사 전시회


전통한복 중에서도 유난히 저고리들만을 한 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저고리 600년 변천사' 전시가 2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시와 복식문화연구원 주최.

중진급 한복 디자이너인 김혜순(金惠順.47)씨가 꼬박 3년을 바쳐 만든 60여점의 저고리가 선을 보이는 자리로, 16세기 안동 권씨 집안의 저고리를 비롯해 17세기 완산 최씨, 18세기 한산 이씨, 19세기 풍천 임씨 등의 저고리들이 재현 또는 부분적으로 복원돼 있다.

"한복은 다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고리 패션의 변천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옛 여인들의 섬세한 미감과 정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옛옷의 고증을 위해 전통복식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희경(전 이화여대 교수) 복식문화연구원장과 김미순 서울여대 교수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전국의 박물관을 답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본을 뜨고 조선시대의 손바느질법까지 그대로 살려가며 한땀 한땀 정성을 들였다.

돌아가신 외삼촌(한복 디자이너 허영. 본명 허종택)의 숙원을 대신 실현했다는 안도감과 기쁨도 크다.

김씨는 저고리 길이의 변천사 하나만으로도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도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던 저고리가 조선초기 들어 허리 아래로 짧아졌다. 근세로 오면서 급격히 짧아져 영.정조 시대에는 소매폭과 저고리 폭을 똑같이 재단했다.

19세기 들어서는 젖가슴이 거의 드러날 정도로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 당시 패션 리더였던 기생들에게서 유래한 것이지만 여염집 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고 김씨는 말한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복식문화대전 1'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앞으로 유사한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일 터.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저고리를 첫 작업의 주제로 선택했을까.

"전통복식 가운데 가장 변화를 심하게 겪었던 것이 저고리입니다. 옛 여인들은 저고리를 스스로 지어입거나 침모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집안과 지역, 개인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이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바로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저고리는 한복의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보여주는 품목인데 시대에 따라 앞섶의 길이와 배색, 소매폭의 조절 등을 달리한 것을 보면 당시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 살면서도 얼마나 복식에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다는 것.

요즘은 한복이라고 하면 흔히 예복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예복은 어쩌다 입는 옷에 불과하고, 그러다보니 우리 옛옷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김씨의 안타까움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우리 옷의 아름다운 색상과 실루엣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김씨의 소망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의상계 일각에서는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요즘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한복계 물갈이'의 한 징표라는 것이다. 즉 과거 '명성 따로 실력 따로'의 경향에서 벗어나 제대로 공부한 40대 실력파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사라는 것이다.

"한복 디자인이라고 하면 으레 구닥다리 취급하잖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어야지요. 공부도 제대로 해야 하고, 디자인이나 미적 감각도 연마해야 하고...한 10년 후에는 이런 작업성과들을 모아 한복박물관도 만들 겁니다"



http://210.116.103.137/data/newinfo_view.html?id=909&code=board_new



| 김영사 보도자료 |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의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

김혜순 | 252쪽 | 값43,000원 | 양장 | 올컬러


한국 여인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열정이
한 땀 한 땀 혼신으로 지은 저고리를 통해 아름답게 되살아난다!
고혹적인 자태, 눈부신 색감, 절제된 미,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이 빛나는 우리 저고리의 모든 것! 문화와 역사, 예술을 꽃피우고, 한국미를 오롯이 담은 매혹적인 우리 저고리를 통해 한국 여인들의 내밀하고 은일한 삶을 들여다보다!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교수가 수많은 복식 관련 자료와 사료를 발굴, 우리나라 복식사의 새로운 경지를 펼친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가 출간되었다. 저자 김혜순 교수는 드라마 <토지>, 영화 <서편제> <천년학> 등의 의상을 제작했으며, 특히 2006년 방영된 KBS 드라마 <황진이>에서 다양한 무늬와 화려한 색감의 한복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패션쇼와 ‘저고리 600년사’와 같은 전시회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FENDI가 ‘세계 10대 아티스트’로 선정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복 디자이너이다.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고혹적인 자태, 눈부신 색감, 절제된 미,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이 빛나는 우리 저고리의 모든 것을 다룬 국내 유일의 저고리 대백과이다. 상고 시대부터 6천 년의 세월을 한국 여인들과 함께해온 저고리의 유래와 종류, 구성, 변천사, 도식화를 비롯하여 저고리 600년사를 완벽하게 복원한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호방한 고려 여인의 긴 저고리, 구중심처 여인들의 격조 있는 삼회장저고리,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무명저고리, 기녀들의 열망이 숨겨진 초미니 저고리… 여인들의 삶과 사랑이 오롯이 담긴 다양한 종류의 저고리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저고리를 통해 우리 역사의 흐름과 문화의 발전상까지 한눈에 읽는다! 합리적이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은 저고리,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유행을 이끈 저고리의 색과 세밀한 짜임새, 저고리 속에 담긴 생활 풍속사를 총망라한 우리나라 복식사에 기념비적인 책이다!

저고리의 역사를 말하다
한자어로 ‘적고리(赤古里)’로 표기하는 저고리는 상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바지나 치마와 같이 하의에 해당하는 옷 위에 입는 포에 비하여 길이가 짧은 상의를 뜻한다. 적고리는 조선 초 세종 때 처음 쓰였으며,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의 《선전의選奠儀》에 치마를 가리키는 ‘쳐마’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기원으로 상고시대로 두고 있는 저고리는 우리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고 있으며, 착용 범위를 본다면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상하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착용하였던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의복 형태이다.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저고리의 기원에서부터 종교와 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른 저고리의 다양한 변천사를 역사적 고증에 의해 하나 하나 밝혀내고 있다.

저고리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상고 이래 계승되어 온 저고리는 기본형을 중심으로 바지나 치마에 비해 그 형태 변화가 비교적 다양하다. 고대에는 기마 활동에 편리하도록 긴 저고리를 입었으나,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교주의에 입각한 남녀유별을 옷에도 적용하면서 여자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진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로는 현저하게 단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심지어 19세기에 이르면 최고 14.5cm로 짧아져, 가슴조차 가리기 어려운 형태가 된다.
저고리 길이의 변화는 깃이나 소매, 섶을 비롯한 다른 구성 요소들의 변화를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속옷으로 입는 저고리의 변화, 짧고 밀착된 저고리에 어울리는 작은 가슴을 만들기 위한 가슴 졸잇말이나 노출된 가슴을 가려주는 가리개용 허리띠를 등장시켰다.
김혜순 교수가 10여 년에 걸쳐 복원한 15세기 조반부인의 저고리에서부터 20세기 개화기 여성이 입었던 저고리까지, 70여 점의 저고리를 통해 600년 복식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저고리의 변천사를 완벽하게 포착해낸 획기적인 책이다.

저고리를 보면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저고리의 변천이나 모양 변화, 다양한 종류의 저고리를 시대상이나 역사, 문화와 맞물려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저고리만큼 유행에 민감한 옷도 없었고, 계급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옷도 없었다. 가령 깃, 섶, 고름, 곁마기, 끝동에 이색(異色)의 천을 달아 멋을 낸 삼회장저고리의 경우 역사적으로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우선 신분이 높아야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제도적으로 금지가 되어 있어 서민들은 입을 수 없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입지 않는 옷의 형태고 젊은 사람들이 입었다.
한복의 모양새가 비슷해 한복을 패션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복에도 역시 유행이 존재한다. 조선 전기의 경우 왕실을 비롯한 양반의 부녀자들이 옷의 유행을 주도하여,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파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오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양반 부녀자들이 아닌 기녀들이 유행을 주도한다. 조선 후기 기녀들의 옷을 살펴보면 당시 어떤 옷이 유행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짧은 저고리에 가슴을 가리기 위해 긴 허리띠를 댄 것이 확인 가능한데, 기녀들만이 아니라 양반가의 여인들에서도 이 형태의 저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옷의 미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옷에 담긴 풍속사, 시대상, 문화 발전상, 유행의 패턴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어, 복식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추천의 글
선조들의 바지런하고 정성스러운 손길과 지혜, 그리고 수천 년 이어온 장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은 한국 복식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맥이 끊겨 가던 우리 전통 한복을 되살리고 그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획기적인 책이다. -유희경(복식문화연구원 원장)

추녀의 곡선과 같이 하늘을 향한 듯한 배래선, 둥글면서도 뾰족한 섶, 곡선과 직선의 조화가 돋보이는 옷이 바로 저고리이다. 옷을 입고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동적인 선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세계인은 없을 것이다. -임권택(영화감독)


지은이
김혜순
전통 복식 연구가이자 전 세계가 인정한 한복 디자이너.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땀 한 땀 혼신을 다해 한복을 짓는 김혜순은 아름다운 우리 한복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드라마 <토지>, 영화 <서편제> <천년학> 등의 의상을 제작했으며, 특히 2006년 방영된 KBS 드라마 <황진이>에서 다양한 무늬와 화려한 색감의 한복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드라마 <황진이> 의상은 섬세한 안목과 격조 있는 디자인으로 한복의 멋과 유행을 선도하고 패션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현대 한복의 미의식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예정藝丁 김혜순 한복’ 대표이며, 한국복식과학재단 상임이사, 원광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왕실과 한국 전통의 만남’ ‘2010년 G20 패션쇼’ ‘The Korea American Association of Greater New York’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패션쇼와 ‘저고리 600년사’와 같은 전시회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FENDI는 ‘세계 아티스트 10인’으로 선정했으며, 2007년 한국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왕의 복식》 《기녀에게 예인의 옷을 입히다》 등이 있다.

이 책에 대한 문의가 있으시면 편집부로 연락을 주십시오.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39541&category=000000060002


한복 연구가 김혜순
원 없이 펼쳐 보인 명품 한복의 진수


“전생에 제가 백무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전생에 자신이 황진이의 스승 ‘백무’였을 거라고 나긋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드라마 <황진이>를 그토록 아름다운 한복의 넋으로 물들인 그녀라면 전생에 ‘여악행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해도 기꺼이 믿어주고 싶은 얘기 아닌가. 새로운 숍을 오픈한 지 겨우 4일째. 한창 어수선한 때를 골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진정 백무를 닮은 기품과 조용한 열정으로 한복의 고운 선처럼 그리 존재하고 있었다.
드라마 의상 협찬이라는 게 남는 것 없이 퍼주는 일인지라 어지간한 동기 부여 없이는 하기 힘들지만, 그녀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이자 평생의 한恨을 푸는 자리가 됐다. 젊은 세대에게도 이른바 ‘필 꽂히게’ 만든 <황진이>의 한복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음은 부정할 이 없을 터. 인터뷰차 그녀를 찾은 날도 촬영장으로 보낼 의상들을 최종 점검하고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을 꼴딱 새워가며 휘황찬란한 한복들을 만들어낸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은 그 고단한 작업을 두고 ‘원풀이’라는 표현을 썼다. 재작년 그녀가 기녀복으로 쇼를 열고 옥션을 했을 때, 우리는 이미 그녀가 가진 꿈의 간절함을 살짝 엿보지 않았던가.

“기녀복이 너무 하고 싶어 혼자 준비를 하고 있었죠. 황진이의 옷, 소품, 노리개 등 기생에 관한 일습을 다 만들어 전시를 했는데, 그 고생을 하늘이 알아줬는지 이런 기회가 온 거예요. 당시 패션의 리더였던 기녀복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힘든 작업이지만, 원풀이하듯이 하니까 얼굴 한번 일그러지는 법이 없더군요.”

3년 전에 저고리 600년의 변천사 복원 작업과 관련하여 전시를 한 그녀는 기품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우리 옷이 계속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에 그처럼 사서 고생하는 일을 심심치 않게 벌이고는 했다. 덕분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드라마 <황진이>의 한복까지 맡게 됐고 말이다. <황진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의상 협찬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한복이 다시 한 번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그녀의 비장한 각오가 빚어낸 결실이다. 한복이 갖고 있던 고리타분한 틀을 깨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참신한 매력들을 되살려내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

“지금까지의 한복과 달라 보인다며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 전통 한복의 ‘기본’을 깨뜨린 부분은 없어요. 특히 저고리와 치마의 선線은 그대로 유지했죠. 우리 고유의 선은 손을 대는 순간 너무나 추해지거든요. 소위 말하는 ‘퓨전 한복’이 절대 아니라는 얘깁니다. 23년간 모은 원단들, 그동안 모아 놨던 모든 것을 다 꺼내서 아낌없이 소진했어요. 황진이는 원래 16세기 기생이지만 당시 복식에 대한 자료가 없어 19세기 초 윤선도나 김홍도의 미인도를 토대로 작업했죠.” 자유분방한 입성을 즐기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맵시나 치장에 신경을 쓴 이들이 기생이기에 그 의복 또한 단연 눈부실 수밖에 없다는 것.

23년. 한복과 함께한 지난 세월은 이제 드라마 <황진이>를 계기로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그녀가 여기까지 오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하나가 있다. 탤런트 출신으로 한복 디자이너이면서 인형 연구가였던 허영, 바로 그녀의 외삼촌이다. 마치 ‘백무’가 손을 내밀어 어린 ‘황진이’를 교방의 문턱 안으로 이끈 것처럼, 외삼촌은 한복이라는 낯선 세계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결국 그 덕에 의상 협찬 일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갈 수 있었다. “난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지만, 넌 사람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라”라던 외삼촌의 말을 그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복의 미와 철학을 알리는 데 온 삶을 다 바친 것도 외삼촌의 각별한 애정과 가르침을 이어받고자 한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혈육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의 눈을 번쩍 뜨게 해준 스승이니 외삼촌이 그녀의 인생에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역삼동에 새로 지은 사옥은 한눈에 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4층에 자리 잡은 전시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단지 옷만 팔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예쁜 한복을 맞춰가는 것도 좋지만 한 벌의 옷으로 설명될 수 없는 더 깊고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공간이다. 웬만한 지극정성이 아니고서는 전시관도 그처럼 단아하게 꾸며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정리’를 위한 작업의 연장선이에요. 이번 작업을 계기로 우리 옷의 기품과 미덕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죠. 다만 ‘어떻게’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한복은 접어서 보는 평면적인 옷입니다. 그만큼 마음도 정갈해야 하고, 기품 있는 정신과 철학까지 알아야 그 진정한 미에 눈을 뜰 수 있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그동안 작업한 옷으로 다시 한 번 쇼를 하고 전시도 열 계획이다. 인기 있는 드라마일수록 그 여운이 오래가는 법인데, 이번에는 화면에 등장한 옷 한 벌 한 벌이 저마다 살아 숨 쉬는 이미지가 되어 아쉬운 마음 한편에 자리할 것 같다.

http://www.skinnovation.com/service/sabo/2004/03/03_01.html





한복에도 저런 디자인이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뿐만 아니라 한복에 대한 새로운 지식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극 속의 한복은 드라마 의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복 디자이너로 20년의 경력을 가진 나 역시 사극에 필요한 한복을 제작하거나 협찬하는 경우 철저한 고증의 과정을 거치며 참으로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인다.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한복은 단순한 옷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실적 존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저한 고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전통복식 문화를 전달하기 어렵다.

“언니, 정말로 저고리가 저렇게 길었어, 내가 입었던 저고리보다 두 배는 더 긴 것 같네….” 사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가까운 후배가 내 한복 매장에 놀러 왔다. 후배는 TV 사극을 보며 알게 된 저고리 디자인 지식을 가지고 은근히 내 실력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언니도 그런 옷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저런 디자인이 정말 있었어?”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후배가 참 대견하다. 사극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한복 디자인까지 유심히 보며 복식문화를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해 10월, 나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저고리 600년 변천사’ 전시회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가진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6백 년 동안 변화한 저고리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게 기획된 전시회였다.

70여 점의 저고리를 시대별로 제작하면서 저고리의 디자인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옛날 여인들에게 무슨 패션이 있었겠어? 치마저고리에 무슨 유행이 있었겠어? 그저 몸을 보호하고 가리기 위해 옷을 입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통해 조선시대 여인들에게도 뛰어난 패션 감각이 있었으며 한복에도 변화무쌍한 유행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저고리는 특히 길이에 변화가 많았다. 엉덩이를 가리는 긴 저고리에서 허리길이의 저고리, 가슴길이의 저고리, 가슴이 다 드러나는 초미니 저고리 등 길이의 변화가 가장 눈에 뜨인다. 뿐만 아니라 바느질 기법, 고름, 곁마기, 섶, 동정, 끝동에 이르기까지 저고리라는 이름 한 가지에 형태는 수 백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저고리의 이름도 적삼, 속저고리, 저고리, 겉저고리에 이르기까지 실로 변화무쌍하니 조선시대 저고리는 현대 유행을 능가하는 패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대부분의 유행은 상류층의 문화를 추구하고 닮아가는 경향이 강한데 비해 여인들의 저고리는 특이하게도 하향식 유행 흐름을 탔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 여염집에서도 겨드랑이가 드러날 정도로 짧아진 저고리가 유행했는데 이는 기방의 기녀들이 즐겨 입던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사대부가 여인들조차도 남성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저고리만큼은 기녀들의 디자인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옷의 색깔은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소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소매끝동의 경우 자주색은 남편이 살아 있는 여인만 달 수 있었고, 아들을 낳은 경우 남색 끝동을 달 수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대체로 노랑색이나 연두색 저고리를, 나이든 여성들은 옥색이나 회색을 주로 입었으며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색동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저고리를 통해 조선시대 패션을 다 읽는다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한복을 단아하고 화사한 이미지로 두루뭉술하게 묶어서 그 특성을 규정짓기에는 시대와 환경에 따른 변화가 너무 다양하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옷에 정성을 기울였다. 멋을 내기 위해 갖가지 바느질 기법이 등장하였고 서로 어우러지는 소재, 깃과 섶, 끝동 등에 다양한 기교를 부려 끊임없이 패션을 창출하고 변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저 한복을 구성하고 있는 한 요소가 아니라 그것 하나만으로도 조선시대 여인들이 어떤 패션을 즐겨 입었는지, 시대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고리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최고의 패션 아이템이었다고 할 만하다.


http://blog.daum.net/memories62/13687

글쓴이 김혜순(hyesoon608@hanmail.net)은
20년 경력의 한복 디자이너로 ‘김혜순 한복’의 대표를 맡고 있다. 목원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이며
월간 <아름다울 美>의 발행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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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600년 展 | 미용/자격/패션/취업/창업
그리움☆ 2010.03.03 21:38 http://blog.daum.net/memories62/13687

조선시대도 '섹시한 여인네' 인기였다하오
서대문 서울역사박물관 <저고리 600년> 전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이영애)의 저고리를 유심히 본 시청자라면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작은 매듭으로 되어 있는 장금이의 저고리 앞고름은 오늘날 한복에서 볼 수있는 고름과는 어딘가 차이가 느껴진다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서대문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저고리 600년> 전시회를 보면 이 의문의 실마리를 풀 수 있 다.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해낸 저고리 60점에서 저고리의 변천사가 한 눈에 알 수 있다. 저고리는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 도로 우리의 의(衣)문화에서 그 역사가 깊다



▲ 20세기 수저고리(위) / 어린이 자수색동저고리(아래)

이번 <저고리600년> 전시회는 익산 원불교역사박물관(10/16-26) , 동해시 문화예술회관(11/13-19)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전시된다. 우 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저고리를 재현해낸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선생(47)의 노력이 엿보이는 전시회이다



▲ 16세기 저고리. 큼직한 모습이 왠지 투박하다는 느낌을 준다



▲ 18세기 삼회장저고리. 저고리길이는 허리아래까지






▲ 20세기 금박무늬의 삼회장저고리

더운 여름에 주로 입는 적삼. 당시에는 아무리 더운 삼복더위라 하여도 반드시 속적삼을 받쳐입었다.
또 겨울에는 속적삼 위에 속저고 리와 겉저고리를 입었다고. 모시로 만든 분홍적삼은 주로 새색시들이 입었던 것이라고 한다.
시집살이에서 속시원하라고 한겨울에도 모시적삼을 입었다니 당시 시집살이가 많이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 결혼을 한 사람은 노랑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었다.
자주색고름은 남편이 있는 부인 , 남색끝동(소매끝)은 아들이 있음을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금박무늬는 왕가, 귀족들이나 새길수 있었던 문양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 럭셔리'를 상징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양반이 급격히 늘어나는 조선후반에 가면 일반인들도 금박무늬를 옷에 새길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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